1991년 9월 29일 대전 구장에서 펼쳐진 빙그레와 삼성의 플레이오프 1차전. 1990년 LG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경기를 보며 야구 팬이 된 나는 아빠를 졸라 야구 경기를 보러 대전에 갔다. 내 기억으로 우리는 정규티켓을 사지 못해 암표를 샀다. 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비싼 값에 4장을 샀고, 아빠는 남는 2장을 원래 표 값만 받고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나는 빙그레 팬이었는데, 3루 측 삼성 응원석에 앉아서 응원하지도 안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처럼 자리를 잘못 앉았는지, 경기 중반 누군가 용감하게 빙그레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한 몇몇이 함께 삼성 측에서 빙그레를 응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야구장에 온 우리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2011년 9월 25일.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아빠가 아니라 부인과 함께 야구장을 찾았다. 회사에서 나눠준 표가 있었기에, 행여나 경기를 놓칠까 봐 표를 구하려고 암표 장수를 기웃거릴 필요도 없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야구장은 (비록 작은 구장인 대전 구장이었지만) 엄청 커 보였는데 어른이 되어 본 야구장은 (큰 구장인 잠실 구장이지만) 생각보다 작았다. 옛날 야구장엔 술 마시고 고래고래 응원하는 아저씨들만 가득했는데, 요즘 야구장에는 가족도 많고, 연인도 많고, 심지어 여자들끼리 온 관람객들도 많았다. 그만큼 세월과 함께 응원 문화도 바뀌었다.
어쩌다 보니 SK 응원단 쪽 자리를 구했다. 응원단 석 앞쪽이 명당이라고 해서 자리를 잡았는데, 공격할 때마다 일어서서 응원해야 하고 사람들이 소리 높여 응원해서 조용히 경기를 관람하기 어려운 자리였다. 선수마다 응원곡이 있어서 그 선수가 나오면 다 같이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한창 야구 볼 때 신인이던 유지현은 3루 주루 코치가 되어 있었다
몇 가지 일화.
- 경기 중에 파울볼 하나가 내 자리에서 겨우 2m 정도 떨어진 곳에 떨어졌다. 생각보다 파울볼의 위력이 세서, 맞으면 아플 것 같다. 대개 공을 주우면 손을 들어 자랑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아무도 찾지 못한 것 같다.
- 우리 뒷자리에 앉았던 연인은 치어리더 때문에 싸웠다. 남자가 내내 야구에 대해서 여자에게 과시적으로 설명했다. 7회쯤 넘어 남자가 여자친구 앞에서 치어리더만 쳐다보고 치어리더의 몸매에 대해서도 설명하다가 야구 그만 보고 집에 갈 뻔했다.
- 내가 본 경기 바로 전날이 LG 트윈스가 9년 연속으로 포스트 시즌 진출 탈락을 확정 지은 날이다. 맞은 편에서 열심히 응원하는 LG 응원단을 보니 괜스레 짠한 마음이 든다. 9년 동안 저렇게 열심히 응원해줬는데, 가을 야구 잔치에 한 번도 초대받지 못하다니.
- LG에는 이병규가 두 명이다. 이병규가 5번 타자였는데, 갑자기 8번 타자로 바뀌고, 다시 5번 타자로 나오길래 뭔가 했다. 타율도 3할, 2할대를 오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기사로 본 적은 있는데, 실제 겪으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다음에는 이쪽에서 볼 수 있도록.
스포츠를 TV로 보면 해설을 곁들여 자세히 볼 수 있어 편하고 좋다. 하지만 실제 경기장에서 보면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고, 사람들과 응원하면서 더 경기에 몰입하여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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