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치른지 어느 덧 4주가 흘렀다. 처음에는 신혼여행의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 그 이후에는 뭔가 모를 무기력증에 빠져 결혼식 및 신혼여행 그리고 신혼 이야기를 올리지 못했다. 아직 생활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이 있지만 짬짬히 하나씩 지난 일들을 기록해 보도록 하겠다.
우리의 결혼식은 지난 2008년 5월 10일 오전 11시 서울대학교 연구공원 컨벤션 홀에서 있었다. 주례 없는 결혼식 그리고 고향인 충주가 아닌 서울에서 치루는 예식. 지난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결코 여유롭지 않았다. 결혼식 당일까지도 식순이 완성되지 않았고, 비록 결혼 며칠 전부터는 포기하고 체념했지만 하객이 식당 최소 예약 인원수인 200명을 채워줄 수 있을까도 큰 걱정이었다.
결혼식에 함께 해준 가족과 친구들...
일반적으로 결혼식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부모님의 지인분들이 접근하기 쉬운 고향 충주를 버리고 서울을 선택했기 때문에 하객 수는 큰 문제였다. 흔히 말하는 흥행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먹지도 않은 식비를 내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예식 사흘전에 있었던 충주 (신랑측) 피로연 장에 약 200여분이 다녀갔다고 한다. 충주에서 했으면 그 정도는 기본으로 와주었으리란 생각을 하니 되려 텅빌 것 같은 신랑 측 하객의 수가 더욱 부담이 됐다.
다행히 오겠다고 한 사람들이 95% 이상 와주었고 예상치 못한 하객들까지 해서 목표 인원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기본적으로 할당했던 분량인 신랑 80장, 신부 120장을 초과해서 여유롭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던 100장, 150장의 식권도 바닥이 나서 임시 식권을 만들기까지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고의는 아니었으나 신랑 신부를 포함하여 상당수는 다음 예식의 피로연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예식 간격이 2시간으로 여유로움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현상이다. 결국 우리가 계산한 식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식사를 한 것이다. 첫 예식의 장점이라고나 할까?
신부는 사진 찍느라 바쁘다
찾아와준 가족(친척)분들은 소연이 결혼식에 오셨던 분들은 거의 다 온 것 같다. 우리 집은 외가 쪽과 친밀한 편이라 친가 쪽은 일부(어렸을 때부터 자주 봤던 분들)를 제외하곤 얼굴을 봐도 잘 모른다. 어쨌든 외가 쪽이 70%에 친가 쪽이 약 30%정도 와주신 것 같다. 친구도 올 사람들은 다 왔다. 멀리서 온 심석이를 비롯하여, 늘 바쁜 부라달까지 왔으니 거의 다 왔다고 볼 수 있겠다. 한 두어명 정도는 정말 오랫만에 연락이 닿아서 초대했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노매너를 제외한 대학교 동기 중에서도 3명 정도가 와주었는데 역시 고마웠다. 지난 해 GRE 수업을 같이 들었던 스터디 팀원들도 거의 다 참석해줘서 고마웠다. 동문회에서도 선후배 분들이 몇몇 와주었다. 회사에서는 3분. 전에 알고 지내던 곳에서 2분. 회사에 다른 팀 팀장님이 결혼식이 있어서 다들 그리로 가버렸다. 오신 분들의 이름을 다 적어두고 기억하고 챙겨줘야 하는데 아직 안 적어뒀다. 이번에 충주 내려가면 정리해야겠다.
결혼 식전 몇 가지 기억나는 사항...
- 9시 30분이 조금 넘어서 식장에 도착했는데 11시까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 신랑은 지정된 위치에 서서 사람들을 맞이해야 하는데 나는 너무 돌아다녔다.
- 친구들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사진 찍은게 별로 없다.
- 식전까지 긴장된건 아닌데 목은 엄청 말랐다. 그게 긴장한 것 같기도 하고...
- 결혼식이 아니면 먼 친척들 보기도 어려운데 나름 결혼식의 의의가 아닐까 싶다.
- 결국 3주 동안 계속된 목감기는 결혼식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아....
예식은 생각보다 정신없이 빨리 지나간다. 와준 사람들 하나하나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사실 그러기가 어렵다. 그래도 사진, 영상을 많이 찍어두어서 누가누가 왔는지 언제든지 다시 확인하고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음 시간에는 좌충우돌 우리의 재미있던 결혼식. 본식에 대해서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