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첫 주차는 정신 교육 등의 교육이 많이 있고 본격적으로 훈련이 시작되는 것이 2주차라고 한다. 그렇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의 경우 2주차에도 특별히 많은 훈련을 하지 않았다. 영점 사격과 주간 행군 정도가 큰 훈련이었다고나 할까? 덕분에 3주차와 4주차의 일정이 대단히 빡빡하게 되었다. 내무실의 생활에도 익숙해졌지만 늘 남은 훈련에 대한 걱정을 하던 시절이었다. (난 아무 생각 없었고 --;)

2005년 12월 11일 일요일 (7일차)

훈련소에서의 첫번째 일요일이었다. 오전에는 교회에 갔다. 다행히 찬양 예배여서 좋았다. 광림교회에서의 찬양 예배와 다른 점은 보컬들이 아줌마들이라는 것이 다른 정도였다. 목사가 "군대에서는 상사의 말을 듣고, 교회에서는 목사의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말해서 목사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빨갱이 운운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냥 찬양만 열심히 하다가 돌아오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오후에는 또다시 오침 시간을 가졌다. 원래 오후1에도 종교행사를 해야하는데 논산으로 위문 공연(?)을 간다고 해서 오침을 하게 되었다. 두번째로 머리를 감은 날이었다. 주말은 늘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새벽 2~3시에 세번째 불침번 근무를 섰다.

2005년 12월 12일 월요일 (8일차)

오전에는 구급법을 4시간 실습했다. 손수건을 가지고 실습했다. 특별한 것은 없었고, 교련 시간에 배운 붕대 감기 같은 것을 실습했다. 다행히 인공 호흡 및 심폐소생술 등은 시간 관계상 실습하지 않았다. ㅋㅋ 오후에는 군대예절 시간이 있었고 총기 교육 시간을 가졌다. 처음으로 총기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해봤다. 아직 총의 위력은 잘 몰랐고 이런 후진(?) 기기에서 총알이 나가기나 할까? 하는 의문을 가진 시기였다. 저녁 시간에는 자유시간을 가졌고 밤12~1시 사이에 불침번 근무를 섰다.

2005년 12월 13일 화요일 (9일차)

오전에는 제식 훈련을 다시 했고 K-2 소총 총기 교육이 있었다. 오후에는 총기를 분해해서 닦는 교육을 받았다. 이후에는 미국에 관한 정신 교육을 받았다. 반미 감정을 없애려는 노력이 가상했다. 실제로 약 30%~40% 정도는 북한 보다는 미국을 더 국가 안보상 안 좋은 국가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밤에는 각개전투 CBT 교육이 어설프게 있었다. 컴퓨터는 사용하지 않고 말로만 허풍을 쳤다. 헬리콥터, 탱크 등을 동원해서 훈련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늘 지원 요청을 했지만, 한번도 동원된 적은 없다고 했다. 불침번 근무 밤10~11시로 초번초 근무를 처음 해봤다. 눈치챈 사람이 있을까? 불침번 근무는 매일 2시간 단위로 당겨진다.

2005년 12월 14일 수요일 (10일차)

사격 예비 훈련을 했던 날이다. 삼조준, 평형판, 삼자세 훈련을 했다. 오전에 3가지를 배웠고 오후에도 그것을 반복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훈련이었다. 저녁에는 소대장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다들 별 불만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물론 건의 사항이 있어서 말했던 사항들은 실행되지 않고 있었다. 군대라는 곳이 그렇지 뭐..하는 생각을 했다. 그간 건의 사항으로 나왔던 것이 마스크와 개인 컵이었다. 처음으로 외곽 근무를 섰다. 탄약고 초소에서 근무를 하는 것인데, 밤 10~11시로 다행히 초번초여서 그다지 춥지 않았다. 방한화와 스키파카 등을 착용해서 오히려 약간 더웠다. 알고보니 우리와 같이 근무를 했던 조교는 식봉 조교였다. 면발이 얘기를 듣느라 1시간이 금방 갔다.

2005년 12월 15일 목요일 (11일차)

아침 일찍부터 영점 사격 예비 훈련을 했다. 내일 있을 영점 사격 방법에 대해서 배웠다. 2소대장인 사격 교관이 젤 골때린다. 하여튼 급하게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는 주간 행군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만 식당에서 기름이 얼었는지 불이 안 붙어서 점심을 만들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육개장 컵라면을 줬고, 물도 따뜻하지 않아서 완전 과자였다. 행군을 앞두고 이렇게 부실하게 먹고 오후에 주간 행군을 떠났다. 건빵 하나와 맛스타 음료수 하나를 받았다. 오고 가는 길은 약 14km였다고 한다. 시간은 약 3시간 30분 정도 걸렸고 40~50분 걷고 10분 정도 쉬기를 반복했다.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지만, 눈길이 다소 미끄러웠고 쉬다가 다시 걸을 때 발에 약간의 물집이 잡혀 약간은 아프기도 했다. 심한 훈련병들은 발 뒷부분에 다 까져서 피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오랫만에 세상 구경을 해서 좋았다. 행군을 마치고 온수 목욕을 처음 시켜줬는데 2개 분대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6분이었다. 초고속으로 대충 씻고 나왔다. 물론 내복이 한 벌이니 다시 입었다. 속옷은 처음으로 갈아 입었다. 훈련소 생활은 원래 이렇게 지저분하게 사는 것 같다. ㅋㅋ 아침부터 왼쪽 눈에 다래끼가 살짝 나서는 토요일까지 고생했다.

2005년 12월 16일 금요일 (12일차)

오늘은 영점 사격이 있는 날이었다. PRI라고 하는 것을 배웠는데, 피(P)가 나고, 알(R)이 배고, 이(I)가 갈린다는 PRI이지만 뭐 특별히 심하게 하지 않아서인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오전에 3발씩 2번, 오후에 3발씩 2번 쏴서 총 12발을 쐈다. 조교도 교관도 대책 없게 엉망으로 쐈다. 정작 맞춰야 할 부분에는 한개도 못 맞췄다. 다행히 표적지에서 벗어난 총알은 12발 중 1발에 불과해서 다행이었다. 마지막 3발은 교관이 한숨을 쉬며 크리크 수정을 해줬다. 대책이 안 선다는 말이었다. 사격을 잘 하자 두 번 하고 PRI 좀 하고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만발이 아니라 난발을 했던 것이었다. 사격 영발하면 퇴소 당할까봐 걱정했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2005년 12월 17일 토요일 (13일차)

두번째 맞이하는 주말이었다. 오전에는 대청소를 했고, 오후에는 오침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오침 시작 30분 만에 깨우더니 사진사가 왔다고 사진을 찍으러 다들 전투복으로 갈아 입고 나왔다. 4주간의 훈련소 생활중 가장 추웠던 순간이었다. 다들 얼어 죽는 줄 알았고 사진을 찍는 10여분의 시간이 지옥 같았다. 덕분에 몸이 으슬으슬해졌고 밤에 혼자 앓았다. 일부러 이불 푹 뒤집어 쓰고 땀을 내서 다행히 다음날 멀쩡하게 일어났다. 훈련소 생활 최대 위기의 순간이었다. 아파서 훈련소를 나가야 될까바 맘이 불안불안했었다. 오침 후에는 PX 회식을 했고 자유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2주차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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