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차로 접어들었다. 2주차 주말에 다들 3주차를 걱정했다. 월, 화 각개전투, 수요일엔 유격, 목요일엔 화생방, 금요일엔 주야간 행군의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3주차 주말에는 행복할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3주차 주말이 되면 4주차를 걱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3주차는 실제로도 가장 훈련이 많았고, 바빴던 1주일이었다.

2005년 12월 18일 일요일 (14일차)

일요일 아침에는 탄약고 외곽 경계 근무를 섰다. 10시 30분에서 12시까지였다. 타이거 우즈 닮은 서 조교와 같이 섰다. 다행히 초소 내에서 근무를 서서 춥지 않았고, 1시간 30분의 시간이었지만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어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점심 식사가 반찬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자꾸 연기되어 13시가 되어서야 먹었다. 반찬이 준비되지 않는 경우 골뱅이 반찬을 준다고 했다. 다행히 그냥 반찬이 나오긴 했는데, 알고보니 골뱅이도 꽁꽁 언 캔 골뱅이였다. 오후에는 교회 오후 예배를 드렸는데, 초코파이와 콜라를 줬다. 군대와서 처음 먹는 초코파이였으며 콜라였다. 점심 시간이 늦춰진 관계로 건빵과 맛스타를 줬다. 역시 주말에는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한다. 오늘은 오침 시간은 없었다.

2005년 12월 19일 월요일 (15일차)

오전에는 각개전투 훈련이 있었다.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응용 포복 그리고 약진을 배웠다. 바닥이 꽁꽁 얼어 얼음도 군데군데 있었고, 자갈도 꽤 있어 훈련을 다 받고 보니 여기 저기 무릎 같은 곳에 멍이 약간 들었었다. 높은 포복 시에 끝날 듯 하면 또 시키고 끝날 듯 하면 또 시켜서 정말 이를 악물고 했다. (과장법) 그 조교는 후에 종합각개 예비훈련에서도 골때리게 시켰다. 각개는 잼있는 전쟁놀이라고 들었는데, 의외로 오전 훈련이 약간 힘들어서 걱정했는데 오후부터 한 종합각개 예비훈련은 들은대로 잼있는 전쟁놀이였다. 나는 2번 소총수였다. 한마디로 중요하지 않은 총알받이였다. ㅋㅋ 지뢰개척, 철조만 제거 등 괜히 잡다한 할거리만 더 많았다. 시간이 없어서 끝에 몇가지는 배우지 못하고 갔다. 다음 날의 종합각개전투가 기다려졌다. 저녁때에는 화생방 CBT를 했고 불침번 말번초를 섰다. (05:00~06:30)

2005년 12월 20일 화요일 (16일차)

종합각개전투가 있는 날이다. 이 날에는 전투준비태세라고해서 완전군장에 위장까지 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준비를 해야했다. 신동명 조교가 위장 화장품이 피부에 최악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안 발랐다가 아주 조금만 발랐다. 종합각개전투를 하기 전에 어제 배우다 말았던 것들을 마저 배우고 시작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이것 저것 생략하고 빨리 빨리 대충대충했다. 우리조의 분대장을 한 면바리의 목소리가 크고 60년대 전쟁 영화에 나오는 것 같다며 조교들이 상점을 많이 줬다. 어쨌든 재미있게 종합각개전투를 했다. 시간은 이때까지만 빨리 지나갔다. 오후에는 숙영을 위한 텐트 설치를 했다. 저녁 때에는 총검술 CBT를 했다. 밤에는 숙영을 한다고 난리를 치다가 일석점호 직전에 취소되었다. 중대장인지 대대장이 적극 숙영을 추진한다고 말하던 조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설도 있었다. 하루 종일 이거 한다고 했다가 안한다고 했다가 하는 둥 그야말로 온종일 똥개훈련을 했던 날이고 최악의 날이었다. 3~4시 사이에 불침번 근무를 섰다.

2005년 12월 21일 수요일 (17일차)

육체적으로 가장 힘겨운 훈련인 유격의 날이 밝았다. 그러나 나는 아침에 우연치 않게 작업 인원으로 뽑혀 수류탄 교장 작업을 했다. 비료 포대에 잔뜩 흙을 담아서 옮기는 작업을 했다. 유격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작업 인원들은 기뻐했지만 차차 작업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추위와 포대의 무게는 점점 우리의 어깨와 허리에 무리로 다가왔다. 오전 시간만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작업을 안하고 유격을 하면 어쩌나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다행히(?) 오후에도 작업을 했다. 훈련을 받은 사람들보다 1시간 더 늦은 5시에 작업이 끝났지만 그래도 힘들어하는 다른 훈련병들에 비해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했다. 저녁에는 개인정비 시간을 가졌고 새벽 1~2시에 불침번 근무를 섰다.

2005년 12월 22일 목요일 (18일차)

심리적으로 가장 두려운 훈련이라는 화생방의 날이 밝았건만 오늘도 또다시 작업장으로 끌려가는 순보씨의 마음은 웬지 오늘은 화생방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는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수류탄 교장은 정말 추웠다. 춥단 말 밖에, 그리고 족히 100개 이상의 비료 포대를 나름꾼(나르는 사람)의 지게에 얹어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간병들의 그야말로 '조뺑이~~(철자무시)'까는 모습이 불쌍할 따름이었다. 역시 5시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작업을 마쳤고 사람들의 고통스러웠다던 화생방 이야기를 들었다. 저녁에는 수류탄 CBT를 했다. 신동명 조교가 우레옹의 행동에 분을 참지 못하고(?) 훈육직을 전격 사퇴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훗날 원만하게 처리(?)되서 다행이다. 불침번 근무를 밤11~12시 사이에 섰다.

2005년 12월 23일 금요일 (19일차)

3주차 훈련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원래 주야간 행군이 잡혀 있었으나 눈이 쌓여 있는 관계로 아침부터 눈제설작전을 펼쳤다. 언제나 눈제설작전은 지루하고 힘든 작업이다. 행군 대신 야전축성 CBT가 있었다. 그야 말로 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이 CBT를 하고 야전축성 교육을 1시간 정도 하였다. 오후에는 마지막 제식 교육을 전준영 조교에게 열라 뛰어다니면서 배웠고 총검술 2시간을 하였다. 언제나 총검술은 팔이 아프다. 총을 들고 있는 것 만으로도 총검술 시간은 괴로운 시간이다. 언제나 폼은 어설퍼도 조교가 볼때는 바짝 들려고 노력했다. 마지막 외곽 근무가 새벽 3시~4시 사이에 있었다. 불침번 근무자들이 시간을 잘못 알고 깨우지 않고 있었다. 내가 새벽 2시 30분에 벌떡 일어나지 않았으면 많이 늦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같이 했던 조교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2005년 12월 24일 토요일 (20일차)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격주 휴무의 휴무 토요일이었다. 전준영 조교는 주말에 뭔가 특별한 이벤트를 해야 한다며 오목 대회를 열었다. 몇몇 귀찮아 하는 사람들은 대충 두고 몇몇은 정말 고심을 하면서 오목을 뒀다. 오목판을 만들기 위해 조교가 자를 준비해왔고, 열심히 오목판을 만들었다. 나는 면발이 영우와 오목을 뒀는데 한 판만 두고 졌다. 원래 3판 2선승제인데, 그만 하자고 했다. 행정실에서 총기손질을 하라고 해서 오목 대회가 간헐적으로 열릴 수 밖에 없었다. 오전 시간이 끝나갈 무렵 경호형, 피터형, 종훈이 이렇게 1, 2, 3등을 했다. 경의 형이 아깝게 4등을 했다. 이 사람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선물이 주어졌다. 피복 지급이 이루어졌다. 전투복 상하의와 야전상의 그리고 전투모가 나왔다. 곧 집에 가는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1주일이 남았으며 시간은 더욱 더 느리게 지나갈 것이다. 오후에는 오침 시간을 가졌고 마지막 PX 회식을 했다. 이젠 서서히 하나하나에 '마지막'이란 단어가 붙기 시작했다. 이 날이 '마지막' 토요일이었듯이 말이다. 밤에는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위문 공연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위문 공연을 올까 다들 기대에 부풀었지만 늘 그렇듯이 '사노전사' 분들이 공연해주셨다. 이런저런 성탄절 찬양과 함께 댄스 이벤트(?)도 있어서 잼있었다. 내무실 사람들이 초코파이도 많이 탔다. 군대에서의 마지막 토요일 밤이자 크리스마스 이브는 이렇게 지나갔다. 즐거웠던 만큼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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